
[매일안전신문] 요즘 세계가 한류를 만나는 방식은 예전과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음악을 반복해 들으며, 이야기 속 인물과 감정을 따라가다 서서히 깊이 빠져드는 흐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릅니다. 몇 초짜리 영상 하나가 먼저 도착합니다. 이야기보다 장면이 먼저 퍼지고, 이해보다 반응이 먼저 일어납니다. 한류의 시작점이 ‘작품 전체’에서 ‘짧은 장면’으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이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지난 3월 발표한 ‘2026 해외한류실태조사’에 따르면, 해외 30개 지역 2만74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한류는 더 이상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생활문화로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류를 처음 접하는 경로입니다. 많은 이용자들이 SNS와 숏폼 영상을 통해 한국 문화를 처음 접한 뒤, OTT 시청이나 실제 소비로 이어지는 흐름을 보였습니다. 월평균 한류 콘텐츠 이용 시간은 14.7시간, 월평균 지출액은 16.6달러로 집계됐습니다. 짧은 영상이 단순한 소비를 넘어 더 깊은 경험으로 이어지는 출발점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조사에서 더욱 눈여겨볼 부분은 한류가 ‘라이프스타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한국 콘텐츠를 접한 뒤 실제 제품과 서비스 구매에 영향을 받았다는 응답은 64.8%로 나타났고, 이는 3년 연속 증가한 수치입니다. 이제 한류는 ‘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사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시작에는 1분도 되지 않는 짧은 장면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몇 초의 인상이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소비로 이어지는 구조가 점점 더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이 흐름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분야가 K-푸드입니다. 요즘 한식은 긴 설명이 필요한 음식이 아니라, 화면 속 한 장면만으로도 호기심과 욕구를 자극하는 음식이 됐습니다. 치즈가 길게 늘어나는 한국식 핫도그, 김이 오르는 찌개, 젓가락에 감겨 올라오는 라면 한 가닥은 긴 설명 없이도 사람의 시선을 붙잡습니다. 해외 매체들 역시 이러한 음식들이 SNS를 통해 확산되며 실제 매장 방문과 소비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보는 장면이 먹는 행동으로 이어지는 구조’, 이것이 지금 K-푸드가 세계에서 확산되는 방식입니다.
실제 행동 변화도 뒤따르고 있습니다. 미국 마케팅 기업 MGH의 2025년 조사에 따르면 TikTok 이용자의 64%는 플랫폼에서 새로운 식당을 알게 됐고, 58%는 실제로 방문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56%는 영상을 보고 평소보다 더 먼 거리까지 이동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이는 짧은 영상이 단순한 정보 전달을 넘어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행동의 계기’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흐름은 한류의 확산 방식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제 한류는 ‘보는 문화’를 넘어 ‘움직이게 하는 문화’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맛은 혀로 느끼는 것이지만, 이제는 스마트폰 화면이 식탁보다 먼저 입맛을 움직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플랫폼 환경도 이러한 변화를 더욱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YouTube에 따르면 쇼츠는 하루 평균 2000억 회 이상 조회되며, 하루 업로드 영상은 2000만 개 이상에 달합니다. 이렇게 방대한 콘텐츠가 쏟아지는 환경에서는 긴 이야기보다 첫 장면의 인상이 선택을 좌우하게 됩니다. 콘텐츠의 경쟁 단위가 ‘작품 전체’에서 ‘첫 장면’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류가 “짧아졌다”는 말은 깊이가 얕아졌다는 뜻이 아니라, 세계가 한국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 들어오는 입구가 달라졌다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예전에는 작품이 사람을 오래 머물게 하며 팬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짧은 장면이 먼저 발걸음을 멈추게 하고, 그다음에야 긴 서사로 이끕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길이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구조입니다. 짧은 영상은 긴 콘텐츠를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으로 들어가게 하는 또 하나의 ‘현관문’이 되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한국 콘텐츠는 원래부터 ‘장면의 힘’이 강한 문화였습니다. 선명한 색감, 빠른 편집, 포인트 안무, 감각적인 음식 연출은 한류의 본질적인 특징이었습니다. 숏폼 시대는 이 특징을 약화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잘 드러나게 만든 환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류가 변한 것이 아니라, 한류가 지닌 장점을 더욱 또렷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류는 더 이상 완성된 작품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사람을 처음 붙드는 한 장면, 저장하고 싶게 만드는 몇 초, 공유 버튼을 누르게 하는 인상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긴 이야기가 팬을 오래 머물게 했다면, 짧은 장면은 새로운 사람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한류는 바로 그 움직임 위에서 다시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한류를 두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류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세계가 한류를 만나는 첫 문장이 더 짧아졌을 뿐입니다.
/ 위드온 글로벌 브릿지 하지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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