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밀양 여중생 성폭행 사건' 무차별 공개, 법치주의 흔드는 사적 제재일 뿐이다

신윤희 기자 / 기사승인 : 2024-06-08 15: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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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유튜버, 동영상 일괄 삭제 다행스런 일
공개 이후 무차별 공격으로 선의 피해자 발생
가해자에게는 아픈 상처 건드린 2차 피해도
사적 제재는 명백한 불법인만큼 정당화될 수 없어
수사기관 공권력 엄정 행사만이 사적 제재 근절의 해법
▲유튜브 '나락보관소'가 밀양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중 한명으로 지목한 인물이 군대 근무시절 모습을 소개한 동영상 캡처.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공개해 사적 제재 및 2차 피해 논라에 휘말린 유튜버가 5일 해당 영상을 모두 삭제했다. 유튜브 채널 ‘나락 보관소’ 운영자는 7일 오후 채널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죄책감 때문이라 영상을 다 삭제 했다”고 밝히고 이같은 조치를 취했다. 그는 “현재는 연락이 두절된 피해자 가족 분들이 먼저 연락을 취해주시고, 공론화를 원하신다면 달리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피해자를 지원하는 한 인권단체가 삭제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했으나 이유가 어찌됐든 문제의 영상을 삭제한 것은 뒤늦었지만 다행스런 일이라고 하겠다.

 범죄를 저지른 특정인을 응징하기 위해 동영상을 공개하는 것은 사적 제재일 뿐이다. 2004년 12월 밀양 지역 고교생 40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밀양으로 꾀어내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하고 피해자 여동생을 폭행하고 금품을 빼앗았다. 당시 검찰이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하고 20명을 소년원으로 보냈다. 사법적으로는 단죄가 이뤄진 사안이다. 물론 20년전 성범죄에 대한 처벌 기준이 지금보다 한참 느슨했을 수는 있다. 그렇다고 지금의 기준으로 과거를 단죄한다는 건 법치주의를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20년 전 사건은 ‘나락 보관소’ 유튜버가 동영상을 올려 가해자들의 실명과 직장 등을 공개하면서 최근 재조명됐다. 가해자 중 한 명인 박모씨가 2022년 8월 방송된 유명 쉐프의 방송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등장하면서 관심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동조해 가해자들이 일하는 직장 홈페이지나 소셜미디어네트워크 계정 등으로 몰려가 항의했다. 특히 박씨가 일했던 경북 청도 국밥집이 공격 대상에 올랐는데, 무허가 건축물 영업까지 드러나 결국 철거됐다. 업주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는 사과문까지 내걸었다고 한다. 불법에 눈감아선 안 될 일이지만 특정인에게 돋보기와 현미경을 꺼내들어 처벌의 칼날을 들이대면 이를 피해 갈 대상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동영상 공개를 계기로 가해자의 여자친구로 지목된 네일숍 운영자가 피해를 입는 일도 있었다. 이 피해자가 “마녀사냥을 당했다”며 진정을 내고 유튜브 채널이 사과하는 글을 올리기까지 했다. 피해자의 아픈 상처를 건드리면서 빚어진 2차 피해는 누가 책임일 것인가.
▲유튜브 계정 '나락 보관소'에 올려진 글.

 우리 사회에서 날로 사적 제재가 횡행하고 있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흉악범 뿐만 아니라 성범죄자, 이혼 후 양육비를 주지 않는 ‘배드 파더스’ 등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인터넷에 신상을 낱낱이 공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지난해에는 한 유튜브 채널이 ‘부산 돌려차기 사건’의 가해자 신상을 공개했다.

 다른 사람의 신상 정보를 공개하는 건 의도의 정당성을 떠나 명백한 불법이다. 불법으로 취득한 증거로 범죄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정당성을 떠난 제재는 그저 불법일 뿐이다 이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더불어 검찰과 경찰 등 수사기관이 공권력을 행사할 때 더욱 더 엄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사적 제재가 횡행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공권력에 대한 불신이 큰 탓이다. 죄 지은 사람은 죄에 걸맞게 처벌받는 사회를 만들지 않는 이상 이런 사적 제재는 언제든지 싹을 틔울 수 있다. 결국 법치주의 원칙을 제대로 실현하는 것이야말로 법치주의를 흔드는 행위를 근절할 해법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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