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맞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경성축구단의 에이스 '김용식'은 누구인가

이현정 기자 / 기사승인 : 2024-08-15 23: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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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매일안전신문=이현정 기자] 일본 축구팀 대표로 선발된 단 한 명의 조선인 김용식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15일 밤 10시 20분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경성축구단의 에이스' 편으로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다뤄진 김용식이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1929년 청명한 가을 한 축구장에서 부터 시작한다. 당시 경신학교와 숭실중학교의 축구 경기가 펼쳐졌다. 경기의 승리팀은 숭실중이었다. 그런데 기뻐해야 할 숭실중 선수들이 악에 받친 눈빛으로 누군가를 애타게 찾았다. 힘과 깡으로 경기를 하던 그 시절 숭실중 선수들이 애타게 찾던 인물은 까기의 명수 라고 불리던 김용식 선수였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위해 1935년 조선 선수와 일본 선수의 자존심을 건 대결이 펼쳐졌다. 베를린 올림픽 축구 대표 선발전 격 대회인 전일본 축구선수권대회가 열린 것이다. 김용식이 포함된 경성축구단이 조선 지역대표로 대회에 참가하고 대망의 결승전까지 오르게 됐다. 결과는 6대 1이라는 엄청난 점수 차로 경성축구단의 승리, 경성축구단은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서 펼쳐진 두 번째 대표 선발전 격 대회인 메이지신궁 경기대회에서도 경성축구단은 우승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선수들뿐 아니라 조선축구협회 또한 경성축구단 선수들이 대표 선수로 많이 뽑힐 거라는 기대 속에 1차 후보 명단이 발표되고 선발 결과는 25명의 후보 가운데 조선인은 김용식, 김영근 단 두 명뿐이었다. 이런 부당한 상황 속에서 김영근 선수는 대표팀을 사퇴해 버리고 김용식 선수만 홀로 베를린으로 떠나게 되었다. 김용식은 "나는 여기 단 한 사람뿐인 조선인이다"며 "뼈가 부서지더라도 조선인의 명예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김용식은 일본 선수들 가운데 한 명의 조선인으로 올림픽에 참가했다.

 

베를린 올림픽에서 세계의 벽을 실감한 김용식 선수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됐다. 1만 일 개인기 훈련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1만 일은 단순 계산으로도 무려 27년하고도 145일의 기간이다. 


한편 1910년에 출생해 1985년 별세한 김용식은 대한민국의 1세대 축구 선수와 축구 감독으로 활약했던 한국 축구계의 최고 원로다.

흔히 축구 영웅을 떠올리면 외국의 펠레,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프란츠 베켄바워, 디 스테파노, 한국 축구에서는 차범근 등을 떠올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축구로 사랑을 받았던 축구인이자, 축구밖에 몰랐던 진정 축구를 사랑했던 축구인은바로 김용식이다. 


매일안전신문 / 이현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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