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한 노태우는 누구... 12·12 쿠데타 주도, 말년엔 5·18 사과도

이진수 기자 / 기사승인 : 2021-10-26 16: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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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매일안전신문] 26일 서울대병원에서 향년 89세로 사망한 노태우씨는 군인 출신 정치인이다.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계기가 된 1979년 12·12 군사 반란을 주도했으며, 전두환씨가 실권을 잡은 뒤에는 △체육부 장관 △내무부 장관 등을 거쳐 제13대 대통령을 역임했다.


1932년 경북 달성군 공산면 신용리(현 대구 달성구 신용동)에서 2남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난 노씨는 대구 공산국민학교, 경북중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 11기로 입교했다. 이때 평생의 친구이자 훗날 제12대 대통령이 되는 전두환씨를 만났다.


노씨는 1974년 장군으로 진급, 신군부 2인자로 거듭나며 군 내 입지를 넓혀갔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1년 전에는 대통령 경호실에서 작전차장보를 지내기도 했다.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 사망 당시에는 제9보병사단장으로 있으면서 12·12 군사 반란을 주도, 신군부가 정권을 잡는 주역으로 활약했다.


전씨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에는 ‘전씨의 2인자’로 승승장구하며 정치의 길을 걸었다. 1982년 3월 초대 체육부장관으로 취임한 지 한 달 만에 제41대 내무부장관에 발탁, 1년 3개월간 업무를 수행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985년 민주정의당(민정당) 전국구 3번으로 12대 국회에 입성, 1987년 민정당 대선 후보로 선출돼 1988년 13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대통령 재임 시절 노씨는 ‘북방 외교’를 앞세워 중국·소련(러시아) 등 공산권 국가와 교류를 시작했고, 취임 2년 차인 1989년에는 막후에서 ‘3당 합당’ 빅딜을 성사시키며 현재 보수 정당의 기반을 닦았다. 이때 노무현 당시 의원 등이 합당에 반대하며 뛰쳐나와 만든 게 ‘꼬마 민주당’이다. 또 대통령 직선제를 전격 도입해 현재의 대선 직접 투표를 정착시켰다.


노씨는 1996년 문민정부에서 전씨와 함께 12·12 군사 반란,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의 주범으로 지목, 이듬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김대중 당시 대통령 당선인 요청에 따라 수감 8개월 만에 특별 사면으로 풀려났다. 이후 2002년 전립선암 수술을 받은 뒤 입, 퇴원을 반복하다가 이날 눈을 감았다.


노씨는 말년 장남 재현씨를 통해 5·18 민주화운동 진압에 대한 사죄의 뜻을 전하는 등 전향적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 딸 소영, 아들 재현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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