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안전신문] 몇 년전 동네근처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 과속단속장치가 등장했다. 제한속도 시속 30km. ”와~ 엄청 낮네” 급하게 속도를 줄였지만 자동차는 끊임없이 경고음을 보냈다. 단속장치 앞에서 가까스로 30km를 맞췄지만 그 일 이후 나는 자연스레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를 피해 둘러가는 길을 택했다.
오늘 밤, 오후근무를 마친 작은딸이 밤늦게 퇴근하는 와중에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며칠간 내리는 폭우에 전국 곳곳에서 승용차나 버스가 운행 중 도로에서 물에 잠기는 사례가 속출했기에 너무나 걱정스러웠다. 작은딸은 집에 도착하자마자 운전 중 쏟아진 폭우에 대해 얘기를 쏟아냈다. “물에 찬 도로를 달리는데 물살이 양옆으로 차악~ 갈라지며 오는 내내 물보라를 일으켜서 너무 무서웠다”, “40km로 달려도 무서웠는데 30km로 달리니까 좀 괜찮아서 30km로 왔다”, “고가도로로 오는데 보니까 다리 아래는 잠겼더라”, 등등
딸이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잠자리에 드는 것을 보고 나는 이 글을 쓴다. 30km! 30km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초등학교 횡단보도 앞 제한속도 30km, 폭우 속 안전를 확보하는데 필요한 30km, 평소에는 너무나 느리고 지겨운 30km, 그러나 이 30km야말로 우리가 안전을 지켜내는데 필요한 속도가 아닐까?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추진되고 있는 ‘국민생명지키기 3대 프로젝트’ 는 자살, 교통사고, 산업재해 3분야로 나누어진다. 이 중 교통사고분야에서의 사고사망은 12%(16년대비18년)의 감소율을 보이며 큰 성과를 나타냈다. 그러나 산재사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건설현장 재해사망의 감소율은 미미하다. 타워크레인처럼 재해사망이 대폭 줄어든 부분도 있지만 건설현장 재해사망의 절반을 차지하는 추락사는 사망자 수가 들쭉날쭉하여 효과를 보고있다고 결론내기 어렵다.
현정부는 건설재해사망자수가 집중되어 있는 소규모 건설현장에 시스템비계설치비를 최대 60%까지 지원하는 등 지원책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왜 건설현장의 재해사망자는 줄어들지 않을까?
나는 그 이유를 우리의 문화에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 중 하나는 ‘빨리빨리’이다. ‘빨리빨리’는 굶주리던 대한민국을 배부르게 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의 생존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달려왔다. 150, 180km의 속도로 달리면서 깔아버린 수많은 김용균들이 있었다.
‘아직도 나는 배고프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완전한 선진국에 도달하기까지 속도를 더 내야하고 약간의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사회자본을 더 많이 축적하고 더 높은 목표를 세우는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제 우리는 허리띠를 졸라매며 배고픔을 참아야되는 시절을 살고 있지않다. 대다수의 사회구성원들은 생존에 필요한 쌀 때문이 아니라, 더 나은 문화생활을 위해 더 맛있고 더 색다르고 더 멋진 의식주에 대한 욕망 때문에 더 빠른 속도를 원한다. 지금 우리사회의 속도는 생존을 위한 속도가 아니라 문화소비를 위한 속도다. 문화소비를 위한 속도 때문에 인명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조금 더 멋지고 폼나게 살자고 노동자들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것이다.
건설현장도 마찬가지다. 건설안전관련자의 대부분은 건설현장재해사망이 줄어들지 않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공기단축과 공사비절감’. 누구나 알고 있으나 누구도 속시원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입장에서 ‘공기단축과 공사비절감’은 기업이윤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기업의 숨통이 끊기는데 안전을 준수할 사업장은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백약이 무효다. 물론 국토부 등 각 부처에서 ‘안전을 고려한 적정공기 보장과 그에 합당한 공사비산정 등’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고민이 정책으로 승화되고 현실적으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노력만으로는 어렵다. 정책실현과 함께 우리의 안전의식, 안전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초등학교앞 횡단보도의 ‘제한속도 30km’를 당연하게 여기는 것처럼 건설현장의 공기도 공정의 위험도에 따라 ‘제한속도를 고려한 적정공기와 공사비’를 적용하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되어야 건설현장 재해사망감소정책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좀더 자주, 좀더 오랫동안 시속 30km로 달리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허선형 산업안전지도사/(사)한국산업안전보건지도사협회 사무총장
※ 본 기고문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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