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안전신문] 전날(14일) 국회 앞 농성장에 힘센 정치인들이 줄지어 방문했다. 현장을 찾았으니 빈말이라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고 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진정성있는 행동이다. 지난 11일부터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 故 김용균 노동자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故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씨 등이 단식 농성에 들어갔다.
강 원내대표는 15일 아침 농성장 앞에서 열린 의원총회 발언을 통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재법) 제정을 위한 정의당 철야 단식 농성 5일차다. 영하 10도의 엄동설한이 농성장을 덮치고 있지만 아직 중재법은 제정되지 않았다”며 “국회는 즉시 중재법 원포인트 집중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제 국회 여야 지도부가 연달아 농성장을 찾아주셨다. 어느 때보다 이 법 통과에 대한 의지와 약속을 공언하셨다”며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는 거듭 제정 필요성을 밝히시며 이 법 심의를 최대한 압축적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도 회기 내 처리에 대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또 여야가 이 법을 책임 있게 관철할 때까지 노력해 주시겠다고 박병석 국회의장도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특히 강 원내대표는 “어제 수많은 말들과 약속이 이분들 앞에서 오고 갔다. 희망고문만큼 고통스러운 것도 없다”며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고 살아서는 국회 밖을 나가지 않겠다는 유족들의 울분에 국회는 하루 속히 응답해야 한다. 적어도 연말에는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보내고 싶다고 방문한 분들께 간곡하게 요청하셨다”고 강조했다.
중재법은 영국의 기업살인법을 모델로 설계됐으며 노동자가 일을 하다가 사망하거나 중대재해를 당하면 사업주를 징역형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이다. 핵심은 처벌이 아니다. 감옥에 갈 수도 있으니 제발 노동자의 작업 환경을 안전하게 유지하라는 기업인들에 대한 의무 부과다.
강 원내대표가 지난 6월11일 대표 발의한 중재법 3조 1항과 2항에 따르면 “사업주와 법인 또는 경영책임자 등은 소유·운영·관리하는 사업장, 공중이용시설, 공중교통수단 등이나 생산·제조·판매·유통 중인 원료나 제조물로 인해 그 종사자 또는 이용자가 생명·신체의 안전 또는 보건위생상의 위해를 입지 않도록 유해 위험을 방지할 의무가 있다”고 돼 있다.
당연히 4조에 따라 “사업주나 법인 또는 기관이 제3자에게 임대, 용역, 도급, 위탁 등을 행한 때에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등도 제3자와 공동으로 3조의 의무를 부담한다”고 돼 있다.
만약 노동자가 그냥 다치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 해당 사업주가 3조와 4조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드러났고 그런 가운데 다치거나 죽으면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다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 사망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근래에 민주당 내부에서는 중재법이 아닌 산업안전보건법상 과징금 상향으로 퉁치려는 분위기가 있었다. 장철민 의원이 실제 관련 법을 발의했고 한정애 정책위의장 등이 이런 방향을 옹호하고 있다. 물론 지금은 정의당 등의 노력으로 이낙연 대표와 김태년 원내대표 모두 중재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대세를 인정하고 어떻게든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양새다. 박주민·박범계 의원이 발의한 중재법도 그런 차원에서 이해하면 된다.
민주당은 △중재법 처벌 대상에서 영세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제외 △개인사업자 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4년간 적용 유예 등으로 가닥을 잡는 분위기다. 민주당은 오는 17일 정책 의총을 열고 큰 틀에서 당론을 확정하고 관련 상임위 논의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번 임시국회 때는 통과되기 어렵고 다음 임시국회를 별도로 소집해서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진보진영이나 노동계에서는 민주당의 태도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김수민 평론가는 13일 출고된 <뉴스플로우> 기고문을 통해 “공정경제 3법이든, 노동법 개정이든, 중재법이든 노동과 자본 양쪽에서 항의와 압력이 이어지는 법이다. (민주당 입장에서) 친노동으로 가자니 돈 가진 재계가 무섭고, 자본으로 기울어지면 국민의힘과 다를 바 없는 보수정당임이 탄로날까봐 두렵다”며 “어차피 양쪽에게 욕을 먹을 것이라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중간중간에 저울질을 계속하며 욕과 부담을 최소화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 물론 힘을 가진 쪽으로 더 기울어지게끔 각도도 재야 한다”고 힐난했다.
이어 “이 법(중재법)의 지향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다. 찬성 여론이 정규직화나 임금 인상보다도 더 높다. 국민의힘도 대놓고 반대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으니 야당 반발을 핑계로 대고 빠져나갈 수도 없는 일”이라며 “그런 한편 사고가 나서 기업이 처벌을 받고 비용을 소요하게 된다면 중소기업의 피해는 극심하다는 하소연도 있다. 비전도 책임윤리도 없는 민주당은 쌩쇼와 간보기로 해결하지 못 하는 영역에선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고 비평했다.
국민의힘은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를 5년 이상 유기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별도의 중재법(임이자 의원)을 발의해놓은 상태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정의당 모델로 가도록 노력하되 과잉 입법이 되지 않도록 상임위 차원에서 손을 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강 원내대표는 “늦었지만 여야가 이 법을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고 국회가 논의의 장을 열 수 있는 충분한 조건과 의지가 확인되었다고 본다”며 “이제 더는 늦추지 말자”고 호소했다.
이어 “이번주 예정된 민주당의 원포인트 의총을 비롯 각 당의 구체적인 논의 및 법 제정을 위한 최종 협의점을 반드시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원내대표는 구체적으로 데드라인을 크리스마스 이전 본회의 통과로 보고 있다. / 박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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