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미도 부대 공작원 유해 암매장 사건 진실규명 (사진 : 진실화해위원회) |
진실화해위원회가 실미도 사건 중 1차로 사형이 집행된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의 유해 암매장의 위법성 및 유해 매장지에 대해 규명한다.
진실화해위원회(위원장, 정근식)는 지난 20일 서울 중구 남산 스퀘어 빌딩에서 제41차 위원회를 열고, 실미도 부대 공작원 유해 암매장 사건에 대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판단하고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고 28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실미도 사건과 관련한 규명 과제 중 1차로 사형이 집행된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의 유해 암매장에 대한 위법성 및 유해 매장지 규명에 대해 진실을 밝혔다.
이 사건은 공군이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을 1972년 3월 10일 공군 부대에서 사형 집행할 당시, 가족이나 친척에게 사형 집행을 통지하지 않고 사형이 집행된 이후 시신 역시 인도하지 않은 채 임의로 암매장한 사건이다.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은 1971년 12월 6일 공군본부 보통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 후, 같은 해 12월 21일 공군 고등군법회의에서 항소가 기각됐으며, 상고 포기로 이듬해인 1972년 3월 10일 공군 부대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공군은 수사‧재판 과정에서 공작원 4명이 가족관계와 주소 등을 진술했음에도 사형 집행을 가족 또는 친지에게 통지하지 않았고, 사형이 집행된 이후 시신도 가족에게 인도하지 않은 채 암매장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공작원 4명의 사형 집행 통지 및 시신 인도가 이뤄지지 않은 것은 당시 ‘군행형법’과 ‘군행형법 시행령’을 위반한 불법행위로 볼 수 있으며, 이러한 불법행위가 유족들이 현재까지도 시신을 인도받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이고, 이는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라고 판단했다.
이번 조사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인 공작원 4명의 유해 매장지 추정과 관련해서 진실화해위원회는 그동안 국방부 과거사 진상 규명 위원회, 공군본부 검찰부, 국방부 인권담당관실 등 다른 기관의 과거 조사 결과와 실미도 유족회의 주장 등을 토대로 공작원 4명의 유해 매장지를 서울 오류동 개웅산 일원과 서울 시립승화원 벽제리 묘지, 인천가족공원 등 3곳으로 압축해 조사를 진행해왔다.
또한 과거 조사기록물을 검토하고, 당시 공군 관계자 등의 진술을 청취한 결과를 종합해 가장 가능성이 큰 지역을 서울 시립승화원 벽제리 묘지로 판단했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원회는 공작원 4명의 유해 암매장에 대한 위법성 및 유해 매장지가 규명되었으므로 국가가 사형이 집행된 공작원 4명의 유족에게 사과하고 적극적으로 공작원과 그 유족의 피해 구제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또한 국방부에 대해 공작원 4명의 유해가 가족에게 인도될 때까지 유해 발굴과 유해 매장지에 대한 조사 활동을 지속하고, 유해 발굴 시 유족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 공작원의 유해가 안치될 수 있도록 행정안전부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실행하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했다.
동시에 실미도 사건의 모든 희생자를 위해 적절한 장소에 기림비를 설치할 것도 권고했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진실화해위원회 진실규명 결정은 실미도 사건에 대한 과제 중 첫 번째”라며 “사형이 집행된 실미도 부대 공작원 4명의 유해 암매장에 대한 위법성 및 유해 매장지를 규명한 것”이라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원회는 독립된 국가 조사 기관으로 항일독립운동과 해외동포사,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 사건, 권위주의 통치 시기 인권침해·조작 의혹 사건, 적대세력에 의한 희생 사건, 그밖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 등을 조사하고 있다.
진실규명 신청은 올해 12월 9일까지, 진실화해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인 도청 및 시‧군‧구청, 재외공관에서 우편이나 방문 접수가 가능하며, 신청에 필요한 서류는 진실화해위원회 누리집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다음은 실미도 사건 개요 내용이다.
중앙정보부와 공군은 1968년 4월 1일 북한 침투작전을 목표로 실미도 부대를 창설하였다.
실미도 부대 소속 31명의 공작원은 민간에서 모집돼 3년 4개월 동안 군사훈련을 받았으며, 훈련 기간 중 공작원 7명이 사망하였다.
나머지 공작원 24명은 1971년 8월 23일 공군 기간요원 18명을 살해한 뒤 실미도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공작원 2명도 공군 기간요원과 총격 중 사망해 22명 만이 실미도를 탈출하였다.
실미도를 탈출한 공작원 22명은 버스를 탈취해 사건 당일 서울시 대방동 유한양행 본사 앞까지 진입하였고, 그 과정에서 군.경과 총격을 지속해 경찰 2명 및 민간인 6명이 희생되었으며, 공작원 18명도 총격과 자폭으로 사망하였다.
따라서 1971년 8월 23일 사건 당일 실미도와 서울 진입 과정에서 사망한 공작원은 모두 20명이며, 4명 만이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공작원 4명은 공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1972년 3월 10일 공군 제0000부대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공작원 4명의 사형 집행은 가족에게 통지되지 않았으며, 사형이 집행된 이후 공작원 4명의 시신 역시 가족에게 인도되지 않은 채 암매장되었다.
한편 실미도 사건 당일 사망한 공작원 20명의 유해는 국방부 과거사 진상 규명 위원회가 2005년 11월 서울 시립승화원 벽제리 묘지에서 발굴해 현재 인근 군부대에 안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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