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 초대석]문상주 고려직업전문학교 회장·직능단체연합회 총재

신윤희 기자 / 기사승인 : 2020-07-31 10:5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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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가 넘쳐나는 시대다. 클릭 한번으로, 손안에서 정보를 찾아볼 수 있다. 고전을 통해 삶의 지침을 얻던 시절은 아득한 옛날이 돼버렸다. 요즘 정보의 홍수 속에서 클릭과 스마트폰으로 삶의 지혜까지 검색할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검색불능이다. 이 사회에서 묵묵히 성공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의 목소리가 방향을 잃은 이들에게 한줄기 빛이 되어줄 것이다. 매일안전신문은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성공신화를 써가고 있는 인사들과의 인터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문상주 고려직업전문학교 회장·직능단체연합회 총재
문상주 고려직업전문학교 회장·직능단체연합회 총재

[매일안전신문] ‘인생이란 무엇인가. 무거운 짐을 지고 걸어가는 게 인생이다. 그래서 인생에는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하다.’


어쩌면 그의 삶은 인내로써 스스로 단련해 온 지난한 길이었다.


단지 기다림의 과정만이 아니었다.


그의 가슴에는 늘 꿈이 있었다. ‘인간 냄새가 나는 사람을 양성하는 꿈’. 그리고 ‘돈이 없더라도 누구든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꿈’.


“큰 꿈을 가져라! 꿈을 버리는 것은 무사가 칼을 놓은 것과 같고, 스님이 부처를 버리는 것과 같다.”


고려직업전문학교 문상주(73) 회장은 올해 초 펴낸 자서전 ‘앞으로 5년 세계 5위 코리아’의 마지막 문장을 이렇게 마쳤다.


그는 꿈을 이뤘을까.


고려학원, 한샘학원, 제일학원, 고려외국어학원, 고려중국센터, 비타에듀 등 교육기관, 고려컴퓨터, 고려건설, 고려종합개발 등 사업체, 고려직업전문학교를 이루고 있으니 얼핏 이룬 듯도 하다.


성공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의 꿈은 끝나지 않았다.


문 회장은 올해 초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돈이 없으면 공부할 수 없는 건가요. 누구나 공부하고 싶으면 공부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게 제 꿈이자 소망”이라고 말했다. 평생을 교육 전문가로 살아온 그답게 “사람의 잠재 능력을 계발해서 누구든지 성공된 삶을 살게 하는 일이 교육”이라는 교육철학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이다.


문상주 회장이 지난해 9월 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지속 가능성을 연구하는 지속가능과학회가 수여하는 '지속가능과학상'을 받고 있다. 
문상주 회장이 지난해 9월 경제·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지속 가능성을 연구하는 지속가능과학회가 수여하는 '지속가능과학상'을 받고 있다.

◆“교육은 누구나에게 주어지는 성공의 사다리”


문 회장은 교육을 사업으로 접근하기 보다 꿈을 이루는 과정으로 여긴다. 그는 고려직업전문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에게 학자금 대출이자를 고려문화장학재단에서 지원한다. 학비가 부족해도 학생들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대출원금은 졸업 후 취업해 갚도록 하고 있다.


1986년 설립한 고려문화장학재단을 통해 장학금을 지원받은 학생만 20만명에 근접한다.


오늘날의 그도 학창시절 누군가의 도움이 빚어낸 결과다. 바로 고교 음악선생님이다.


그는 전남 목포에서 고등학교 다닐 때 체격과 힘이 좋아 선배들 눈에 띄었다. 요즘의 일진회와 비슷한 서클 활동을 하면서 빗나갈 뻔했다.


그를 붙잡아준 분이 음악선생님이다. 선생님은 그의 목소리가 좋다고 칭찬하면서 노래 연습을 시켜줬다. 그는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그 분이 바른 길로 인도해 주셨다. 그 분과 매일 노래연습하고 고교콩쿠르에 나가 입상도 했다”면서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을 건네주면서 살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스무살을 갓 넘긴 1968년 그는 상경했다. 약수동 산꼭대기에 집을 얻고 중앙시장에서 밥을 먹었다. 돈이 없어 학교까지 걸어서 통학했다. 당시 어려운 형편 속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려고 작은 입시 지도교실을 차려 학생들을 가르친 게 평생 교육자의 길을 걷게 했다.


그는 교육이이야말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학생들도 교육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은 현실이 됐다.


문 회장은 인터뷰에서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공부하거나 기술을 배우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했다”면서 “학교에 못다닌 아이들, 대학에 떨어진 아이들, 기술을 배우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다. 그들에게 성공 사다리를 놓아준 것이다”고 회상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경험했다. 36개월 고교 과정을 단 6개월만에 끝내는 아이들이 있었다. ‘사람 안에는 신이 숨어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의 성실함과 유능함이 소문나면서 서울 장충동에서 시작한 입시지도 교실은 곧이어 검정고시학원, 대입학원으로 커졌다. 검정고시로만 100만명 넘는 학생을 키워낸 게 그가 자랑하는 큰 자산이다. 그는 “신이 인간에도 두 손을 준 것은 한 손은 일하기 위해서, 한 손은 남을 도와주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고 믿는다.


◆자영업자로서 소상공인 눈물을 닦는 데 헌신


문 회장은 학원을 운영하다보니 어느 누구보다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잘 안다. 항상 소상공인 편에 서 그들의 이익을 지키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학원총연합회장을 맡고 있던 2011년 그는 대기업의 학원사업 진출을 막기 위해 모든 힘을 기울였다. 당시 포스코와 삼성, 두산 등이 학원업계까지 진출할 움직임을 보였다. 대기업은 학원 뿐 아니라 식당, 빵집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중소상인들 삶의 터전을 빼앗을 태세였다. 그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SK커뮤니케이션즈가 학원사업에 진출하려다가 2011년 초 포기했다.


그런 그가 2011년 약속을 지키겠다면서 18년간 이끌어온 학원총연합회 12대 회장 선거에 불출마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하지만 그는 비타에듀 교육그룹 회장과 직능단체연합회 회장으로서 중소상인 돕기를 이어나갔다. 2013년 4월 재래시장 살리기 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전국 재래시장을 서울손님 수천명과 함께 돌며 재래시장 살리기에 힘을 보탰다. 고향인 목포 재래시장을 방문할 때에는 자신의 계열사 전 직원에게 임시보너스를 지급해 물건을 구매하도록 했을 정도다.


지난 4월 21대 총선에서 소상공인당을 창당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을지 모른다.


문 회장은 2008년부터 15년간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회장을 맡았다. 비례정당으로도 국회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소상공인들의 목소리를 국정에 반영할 수 있는 절회의 기회였다. 그는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와 서민의 목소리를 듣고 사회적 약자의 눈물을 닦아주는 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정치의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700만 회원들의 염원을 모아 소상공인당을 창당한 결과는 기대에 못미쳤다.


사실 그는 1998년 서울 종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한 경험이 있다. 당시 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노무현 의원이 후보단일화를 제안해 받아들여 완주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는 자서전에서 “선거운동 한창이던 어느날 당시 국회의원으로 함께 출마한 노무현 대통령이 찾아와 후보단일화 제안해 ‘국회의원이 되어 소외받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동서화합에 기여하고 싶다’고 진정성 있는 말에 움직여 양보했다. 당일 두 사람은 밤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면 속에 있는 얘기를 나눴다. 노 후보가 술값을 자신이 내겠다고 고집했으나 ‘당신이 나보다 고생을 많이하게 되니 내가 하겠다’고 옥신각신했다”고 후일담을 전했다.


직능단체연합회 신년교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상주 총재
직능단체연합회 신년교례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문상주 총재

◆1980년대 초반 일찍 스마트 교육에 눈떠


문 회장은 정보통신기술(IT) 기반의 미래교육을 일찌감치 눈여겨본 인물이다. 컴퓨터가 제대로 보급되지 않던 1985년부터 컴퓨터 인재를 길러냈다.


1980년대 초반 사업차 미국과 일본을 갔다가 놀랐다고 한다. 그곳에선 이름도 생소한 기계를 활용해 많은 일을 빠른 시간 안에 처리하고 있었다. 바로 컴퓨터였다. 그는 엄청난 정보를 컴퓨터에 입력해 놓고 언제든지 쉽게 꺼내쓰는 업무방식에 굉장한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충격은 그를 행동하게끔 움직였다. 우리나라에도 컴퓨터 전문인력을 길러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매년 10명을 유학보내 학비는 물론 매달 생활비까지 10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했더니 임원들이 전부 반대했다. 국가 인재양성에 사기업이 경비를 전액 투자하는 것이니 반대하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1985년 일본의 JKA(Japan Knowledge Industry)사에서 2년간 컴퓨터 교육을 받는 과정에 연수생들을 6차례나 보냈다.


‘일본 컴퓨터 업계중 가장 권위 있는 JKI가 컴퓨터 부분에 기술 연수할 성실하고 유능한 인재를 학원과 제휴하여 아래와 같이 선발함.’ 1986년 1월 신문에 낸 일본장학연수생선발 광고 문구다. 전문대 이상의 관련학과 졸업자와 해당 업무 소지자 대상으로 한 모집은 50대 1의 경쟁률일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문 회장은 일본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유학생들을 영친왕의 아카사카 저택으로 데려갔다. 영친왕은 고종의 일곱째 아들로서 한일병합 이후 일본 왕족 마사코(方子·이방자)와 정략결혼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산 비운의 황태자다. 그는 우리 유학생들에게 “영친왕이 이곳에서 사시게 된 것도 우리 국력이 약했기 때문이니 나라의 힘을 키우기 위해 공부해 매진해달라”고 당부했다.


유학생들이 2년 과정을 마치고 8명이 컴퓨터 기사 시험에 합격했다. 일본 신문에까지 실릴 정도로 화제였다.


그렇게 교육한 컴퓨나 1세대들이 국내 최초로 전국 온라인망을 개발했다. 문 회장은 트윈컴퓨터라는 회사를 직접 만들어 컴퓨터까지 직접 연구했다. 그때 개발한 온라인망이 지금 우리 스마트교육의 기초 고속도로를 깐 셈이다.


문 회장은 김영삼 대통령 재임시절 4년간 교육개혁위원으로 참여해 컴퓨터 보급을 적극 강조했다. 그의 노력으로 우체국 낙전 수입금으로 초중고교에 컴퓨터를 보급해 가르치는 사업이 이뤄졌다. 김대중정부 시절에서도 교육특보를 맡아 컴퓨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100만 주부인터넷교실’의 씨앗을 심었다. 그 덕에 1999년 5월 1.8%이던 주부들의 인터넷 이용률은 2000년대말 19.6% 껑충 뛰었다.


그가 운영하는 비타에듀는 스마트 교육에서 늘 한발 앞서나간다. 비타에듀는 스마트 디바이스인 스마트폰과 태블릿 등에 기초한 스마트 에듀를 선보였다. 삼성 갤럭시탭에 비타에듀의 여러가지 교육 어플이 기본적으로 장착돼 제공되는 프로그램이다. 입시 관련 비타에듀와 내신대비 고려e트, 중고교생 자기주도학습을 위한 비타캠퍼스, 영어회화 중심의 비타 잉글리쉬 등에서 2012년부터 유료로 제공되고 있다.


그의 꿈이 어디까지 펼쳐질지, 그 끝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그의 꿈은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이를 위한 성공 사다리를 놓는 것이라는 걸.


그는 지난 6월 이용섭 광주시장, 박주봉 중소기업 옴부즈만 등 5명과 함께 전국호남향우회(대표총재 임향순)로부터 자랑스런 호남인 대상을 받았다.


◆ 문상주 회장 프로필 ◆
주요학력
- 1992년 연세대학원 졸업(석사, 자치행정)
- 1999년 경원대학교 대학원 명예문학박사
주요경력
<사회활동>
- 1994년 제1,2기 교육개혁위원회 위원(대통령직속)
- 2000년~ 직능경제인단체총연합회 총회장
- 2004년~2007년 한국청소년육성회 총재
- 2008년~현재 학원안전공제회 이사장
- 2016년~현재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 총교우회 총회장
- 2019년~현재 (사)4차산업혁명실천연합 공동대표
- 2020년~현재 (사)한국평생교육기관협회 이사장
<경영활동>
- 1972년 고려학원 설립, 원장
- 1979년 ㈜고려출판 설립. 회장
- 1982년 한샘학원. 이사장
- 1986년 (재)고려문화장학재단 설립. 이사장
- 1997년 중화고려대학 설립(중국 북경). 이사장
- 1998년 (재)고려직업전문학교 설립. 이사장
- 비타에듀그룹 회장
<상훈>
- 1984년 12월 5일 국민훈장 석류장
- 1995년 5월 29일 국민훈장 동백장
- 2002년 11월 체육훈장 거상장
- 2019년 11월 25일 지속가능과학상 경제부문 대상
(국외)
- 1999년 5월 29일 UN세계아카데미평화상 교육자상 수상
- 2002년 12월 6일 터키세계평화상
<저서>
앞으로 5년 세계 5위의 코리아(2020년, 책읽는 사람들 발행)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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