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재계의 거인’ 별세한 이건희는 누구

이진수 기자 / 기사승인 : 2020-10-25 11:2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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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을 설명하는 모습 (사진=삼성전자 제공)

[매일안전신문] 25일 향년 78세로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삼성을 글로벌 그룹으로 키운 주역이자 한국 재계의 거인으로 평가된다.


고인은 선친인 호암(湖巖)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7년 세상을 떠나자 2대 회장에 올라 삼성그룹을 이끌었다.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이병철 회장과 박두을 여사의 3남 5녀 중 일곱번째이자 막내아들로 태어난 이건희 회장은 경남 의령 친가로 보내져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1947년 상경해 학교를 다녔다.


이후 1953년 선진국을 배우라는 부친의 엄명으로 일본 유학을 떠났다.


어린 시절 영화 감상과 애완견 기르기 등에 심취했고 유학생활을 마치고 서울사대부고 재학 시절에는 레슬링부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학창 시절에 그리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한다.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말을 하기 시작하면 쉽게 반박을 하기가 어려운 수준의 지식과 논리를 쏟아내 동기생들을 당황스럽게 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일본 와세다대 상학부와 미국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1966년 서울대 응용미술과에 재학하고 있던 홍라희 여사와 만나 이듬해 결혼했다.


1970년대 이 회장은 미국 실리콘밸리를 누비며 하이테크 산업 진출을 모색했고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삼성그룹 후계자로서 경영수업을 시작했다.


삼성의 해외사업추진위원장을 맡아 유공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쓰라린 실패를 맛본 이 회장은 삼성 경영권을 승계하기까지 20여년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애초 그룹 경영권을 물려받은 형인 고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이 한국비료 사카린 밀수사건으로 호암의 눈밖에 나면서 이 회장이 후계자로 낙점됐다.


1982년에는 양재대로에서 덤프트럭과 교통 사고가 나 아찔한 순간을 넘기기도 했다.


1987년 이병철 창업주 별세 이후 그룹 회장에 취임한 고인은 1993년 신경영선언을 통해 초일류 삼성의 기틀을 닦았다.


이 회장은 삼성가 분할이 거의 완료된 뒤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소집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작심 발언으로 제2의 창업을 선언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품질 경영, 디자인 경영 등으로 대 도약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회장은 남다른 집념으로 삼성을 키웠다. 1987년 1조원이던 시가총액을 2012년 390조원대로 40배나 성장시켰고 총자산 500조원의 외형을 만들었다.


2006년 글로벌 TV시장에서 일본 소니를 제치고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시장 1위를 달성했다. 메모리 반도체를 포함해 20여개 품목의 글로벌 1위를 일궈냈다.


그러나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로 시작된 삼성비자금 사건으로 특검 조사를 받아야 했으며, 특검팀에 의해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되자 2008년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을 발표하는 등 홍역도 치렀다.


이 회장은 2014년 5월 급성 심근경색증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 5개월간 투병해왔다.


한편 삼성은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장례는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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