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안전신문] 정의당의 상징 故 노회찬 의원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먼저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도입하자고 선봉에 나섰던 인물이다. 노 의원은 “공수처 신설을 자유한국당이 반대하는 것은 동네파출소가 생긴다고 하니까 그 동네 폭력배들이 싫어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모기들이 반대한다고 에프킬러 안 사는가?”라고 비유했다.
분명 정의당은 공수처 출범을 누구보다 바라고 있다. 이미 작년 12월30일 우여곡절 끝에 공수처법은 통과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출범하지 못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의 닻을 올리기 위해 법까지 바꿔가며 밀어붙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사실상 그렇게 해도 된다는 시그널을 줬다.
노 의원의 유지와도 같은 공수처를 위해 민주당이 무리수를 감행하고 있지만 정의당 내부에서는 쓴소리가 나왔다.
강민진 청년 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9일 논평을 내고 “민주당의 의회 독주를 규탄한다. 공수처법과 같이 여야간 숙의와 합의로 처리되어야 할 법안은 의석수로 밀어붙였다”며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공수처장 후보 추천의 야당 비토권을 삭제한 것은 민주당의 잘못이다. 공수처법이 이런 방식으로 처리된다면 공수처가 전국민에게 신뢰받는 기구로 출범하기란 요원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를 예고했다. 필리버스터는 소수당의 저항 수단인만큼 민주당이 필리버스터조차 강제 종결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과 가장 대척점에 서 있는 정의당에서 이런 논평이 나올 만큼 민주당식 공수처는 뭔가 잘못 굴러가고 있다.
국민의힘은 원래부터 기소권과 수사권을 모두 쥐고 있는 공수처 자체에 반대해왔다. 21대 국회가 출범한 뒤에도 헌법재판소에 제소하는 등 지속적으로 위법성을 주장하고 있다. 여권에 불리한 수사는 봐주고 야권 인사만 조지게 될 것이라는 취지다. 그래서 국민의힘은 공수처의 법정 출범일 7월을 훌쩍 넘긴 10월 말이 되어서야 추천위원(공수처장후보추천위원회) 명단을 냈다. 국민의힘에 배정된 위원은 2명(임정혁·이헌 변호사)이다. 추천위 정원은 7명이다. 6명의 동의를 얻어야 최종 공수처장 후보 2인을 정해서 문 대통령에게 넘길 수 있다. 즉 국민의힘이 선임한 위원 2명의 비토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만약 국민의힘이 6월부터 명단을 내고 추천위 차원에서 비토권을 행사했다면 좀 더 명분이 있었을 것이다. 명단을 안 내는 방식으로 5개월을 허비한 뒤 추천위에서 또 비토권으로 시간을 끌고 있으니 민주당 입장에서 답답함을 느낄 수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이 작년 4월과 12월 분명 야당의 비토권을 보장했다는 점을 근거로 공수처의 정당성을 설파했던 만큼 비판을 피하기가 어렵다. 민주당은 일찌감치 의석수를 무기로 야당의 비토권을 없애는 공수처법 개정안 카드(위원 7명 중 3분의 2 이상 즉 5명이 동의하면 공수처장 후보 선임 가능)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국민의힘과 협상을 모색하면서도 개정안을 밀어붙이기 위해 준비를 마쳐놨고 전날(8일) 의석수 파워를 가감없이 발휘했다.
지난 11월26일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상무위원회의에서 “공수처의 중립성과 독립성이라는 가치를 지켜야 한다. 어렵겠지만 공수처장 추천이 여야 합의로 다시금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공수처 설치다. 그것이 정의당의 당론이고 한국 정치사에서 공수처 설치를 제일 먼저 화두로 꺼낸 노회찬 의원의 뜻”이라고 강조했다.
공수처를 출범시키되 야당의 비토권을 무력화시키지 말고 추천위에서 여야 합의로 공수처장 후보가 정해져야 한다는 원칙론을 어필한 것이다.
중립성과 독립성이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수민 평론가는 11월18일 매일안전신문과의 통화에서 “(공수처장이 정권 수사를 세게 진행할)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는 본다”면서도 “여권에서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은 (공수처법 24조 1항에 따라) 공수처가 검찰에서 수사하는 걸 받아올 수 있다. 예를 들면 경제범죄 수사를 하고 있는데 고위공직자가 드러나버리면 그때부터 고위공직자가 있으니 가져올 수 있다. 그게 여권 입장에서는 검찰이 하는 것보다는 공수처가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수처법 24조 1항과 2항에 따르면 “수사처의 범죄 수사와 중복되는 다른 수사기관의 범죄 수사에 대하여 처장이 수사의 진행 정도 및 공정성 논란 등에 비추어 수사처에서 수사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여 이첩을 요청하는 경우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하여야 한다”고 돼 있고 “다른 수사기관이 범죄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고위공직자범죄 등을 인지한 경우 그 사실을 즉시 수사처에 통보하여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 원전 조기 폐쇄와 관련된 경제성 조작 및 자료 은폐, 라임과 옵티머스 여권 인사 연루 등 권력형 비리로 의심되는 여러 사안들에 대해 검찰이 수사를 하고 있을 때 공수처가 이첩을 요구하면 넘겨야 할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낸 박형준 동아대 교수(국민의힘)는 11월21일 방송된 TV조선 <강적들>에 출연해서 “(정청래 민주당 의원이 추미애 법무부장관에 대해 무소의 뿔처럼 가고 결국 검찰개혁의 상징처럼 남을 것이라는 SNS 글을 올린 것에 대해) 실소를 금할 수가 없다. 지금 검찰개혁이 누더기가 되어 너덜너덜해졌다”며 “검찰 개혁 나도 원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정치적 중립, 검찰권 남용 방지, 그래서 인권 보호. 이거 하자는 것 아닌가”라고 밝혔다.
이어 “정치적 중립 어떻게 됐는가? 검찰 길들이기로 변질됐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있다. 약자 보호? 지금 권력형 비리를 보호하고 있지 무슨 약자를 보호하고 있는가? 검찰권 남용 방지? 검찰의 인사권을 남용하고 있다. 이러고서 검찰개혁이란 말을 어떻게 입에 올리는가?”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은 무조건 민주당을 저주하고 비난한다. 지금 원내에서 민주당의 행태를 객관적으로 힘있게 비판해줄 정당은 정의당 밖에 없다.
11월25일 사회진보연대는 민주당이 공수처의 본래 취지를 악용할 가능성을 전제하며 “정의당은 패스트트랙 공조에 대해 현실감이 있는 평가를 통해 기존 입장을 과감히 바꿀 용기가 필요하다”면서 “비례위성정당을 통한 선거법의 무력화, 부패 비리에 따른 재선거에서 공천을 하지 않는다는 당헌의 개정(서울부산시장 선거 무공천 원칙의 철회)을 보더라도 민주당이 당리당략에 따라 규칙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히 보지 않았는가”라고 논평했다.
그러면서 “왜 공수처는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는가. 공수처 문제를 다른 시각에서 발언하려고 결단한다면 현재 추미애 법무부장관의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 청구나 직무배제와 같은 문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 속 시원하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조언했다.
이틀 뒤 정의당 소속 이기중 관악구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이 논평을 공유한 뒤 “윤석열이 무슨 대단한 정의의 사도는 아니다. 그러나 윤석열을 내쫓으려는 정권의 의도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다”며 “검찰이 조국을 비롯해 이 정권의 치부를 건드리지 않았다면 오늘의 사태는 없었을 것이다. 이 문제를 구중궁궐의 권력 투쟁으로 치부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은 회피다. 회피해야 하는 이유가 있다. 당의 활동가와, 당원과, 지지층의 상당수가 여전히 정부여당에 우호적이고 또 다시 내분을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라고 설명했다.
이어 “(양당 지지층과 달리 정의당 지지층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호불호가 반반으로 비등하다는 점을 들며) 여기에 정의당의 곤란함이 있다. 그러나 계속 회피할 수 있을까. 보위를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권력을 그대로 두고 민중의 삶을 개선할 수 있나”며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는 말에 우리는 뭐라고 했나. 막말로 대통령 연설문을 최순실이 썼든 박근혜가 썼든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우리가 촛불을 들었나”라고 설파했다.
사회진보연대가 꼬집었듯 비단 공수처 외에 다른 진보적 개혁 의제들에서만 보더라도 정의당의 길은 분명해질 것 같다. 민주당은 공수처법 개정안을 밀어붙인 8일 정무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 등 다른 상임위에서도 여러 법안들을 통과시켰다.
강 위원장은 “(민주당은) 정무위와 환노위에서는 정의당을 기만하고 패싱하며 공정거래법과 노동관련법을 통과시켰다. 반면 민주당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이번 회기 내 처리가 어렵다고 밝혔다”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유지와 ILO 3법(국제노동기구 핵심 협약 비준 관련) 졸속 처리,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 대한 소극적인 태도는 모두 민주당의 현재 행보가 노동자는 외면하고 재계의 손을 들어주는 데에 가 있음을 뜻한다”고 직시했다.
이어 “민주당의 정치적 소명과 우선순위는 어디에 가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도 9일 논평을 내고 “정의당이 뒤통수를 맞았다. 어제 정무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는 조정 회의가 아니라 기만 회의였다”며 “민주당이 내리친 것은 정의당의 뒤통수가 아니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통해 공정경제의 틀을 마련하라는 시대적 요구를 뒤통수 친 것이다. 검찰과의 권력 투쟁에만 골몰하느라 사리분별을 잃은 탓에 재벌 개혁의 원칙을 뒤통수 친 것”이라고 맹공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를 대통령 선거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의 뒤통수를 내리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큰 기업의 답함 및 독점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공정위 뿐 아니라 다른 일반 주체들도 검찰에 고발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전속고발권 폐지다. 민주당은 이를 ‘공정경제 3법’이라고 명명하고 정무위 안건조정위 과정에서 전속고발권 폐지 조항을 유지했다가 정무위 전체회의에서는 빼버린 뒤 통과시켰다.
배진교 정의당 의원은 9일 방송된 KBS <김경래의 최강시사>에서 “(민주당은) 검경수사권 분리라고 하는 이유를 들어서 지금 수사권이 경찰로 넘어갔는데 이걸 검찰로 주면 되는 거냐. 이런 이유를 들고 있지만 실제로 이것은 재계의 압박에 민주당이 손을 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 강은미 정의당 원내대표는 9일 오전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를 항의 방문해서 ‘정무위와 환노위에서의 정의당 패싱’에 대해 공식 사과를 들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앞으로도 정의당이 요구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처리 △낙태죄 완전 폐지 △차별금지법 통과 등 진보적 의제들에 대해 패싱 행보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당은 2018년~2019년 내내 선거법 개혁을 위해 올인해왔지만 끝내 민주당의 뒤통수를 맞고 위성정당 사태로 종결됐다. 4.15 총선에서 교섭단체가 목표였지만 결과는 6석에 그쳤다. 민주당이 제대로 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성안하고 위성정당을 만들지 않았다면 지금 정의당은 32석(300석 × 10.6%)이었다. 민주당식 공수처를 바라보는 정의당이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 될 수밖에 없다. / 박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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