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소송법, 속도보다 방향...균형 있는 제도 설계 필요

이정자 기자 / 기사승인 : 2026-04-28 11: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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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2일 열린 집단소송법 제정 관련 공청회 (사진: 연합뉴스)

 

[매일안전신문=이정자 기자] 집단소송법 제정 논의가 정치권의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다수의 피해를 보다 신속하게 구제하겠다는 취지 자체에는 모두 이견이 없다. 실제로 개인정보 유출 등 대규모 피해 사례가 반복되면서 기존 개별소송만으로는 실질적인 권리구제가 어렵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쟁점은 제도의 필요성이 아니라 균형 있는 제도 설계에 있다. 지난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곽규택 국민의힘 위원이 개최한 ‘집단소송법 제정안의 법리적 쟁점 및 오남용 방지 대책’ 토론회에서는 제도 도입의 당위성보다 현재 논의 중인 법안이 안고 있는 구조적 결함에 대한 비판이 나왔다.

가장 먼저 도마에 오른 것은 소급 적용 문제다. 현재 논의 중인 법안의 경우 법 시행 이전 사건까지 집단소송 대상에 포함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이는 헌법상 금지된 소급입법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학계에서는 우려를 표했다.

특히 집단소송은 기존 개별소송과 전혀 다른 수준의 법적 부담을 발생시킨다. 개별적으로 분산돼 있던 소액 청구가 하나로 합쳐지면서 기업이 감당해야 할 책임 규모는 단순 합산을 넘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이날 토론에서는 수백만 명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이 집단소송으로 전환될 경우, 수천억 원대 배상 책임이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시되기도 했다. 이는 중소·중견기업은 물론 상당수 기업의 존립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옵트아웃(Opt-out) 방식 역시 핵심 쟁점 중 하나다. 이는 피해자가 별도의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 자동으로 소송에 포함되는 구조다. 피해자 구제 범위를 넓히는 장점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재판청구권과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수 있다. 당사자가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권리 관계가 확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방식이 우리 민사소송 체계의 기본 원칙과 충돌할 소지가 있다는 점이다. 소송의 개시와 범위는 당사자 의사에 따라 결정된다는 ‘처분권주의’ 원칙이 훼손될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다수 유럽국가들은 옵트아웃이 아닌 옵트인(Opt-in) 방식이나 단체소송 중심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소송 남발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집단소송이 전면 확대될 경우 기획 소송이나 수익형 소송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해외에서는 변호사 보수 구조와 결합된 집단소송이 기업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활용된 사례도 있다.

이 경우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은 중소·중견기업이다. 대기업과 달리 법무 대응 인프라가 부족한 기업들은 소송 자체보다 대응 비용만으로도 경영 부담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 소송 결과와 무관하게 비용과 시간, 이미지 훼손이 누적되면 결국 투자 위축과 고용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또 현재 논의되는 법안은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민사 영역으로 집단소송을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피해 구제 범위를 넓힌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일 수 있지만, 사실상 대부분 민사 분쟁이 집단소송으로 전환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는 점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증거개시 제도(디스커버리) 도입에 대해서도 논쟁이 일고 있다. 기업 내부 자료 제출을 강제하는 구조는 피해 입증을 용이하게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영업비밀 유출이나 소송 전략 악용 등이 발생할 수 있다.

법은 균형이다. 법적 안정성과 경제적 현실, 사법 체계의 원칙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 집단소송법 역시 마찬가지다. 어떤 방식이 우리 사회에 적합한지에 대한 보다 정교한 논의가 필요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서두른 입법이 아니라, 충분한 검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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