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청년 사장님의 우동→47년 마늘떡볶이·한치 불고기 까지...'힘내라 명동'

이현정 기자 / 기사승인 : 2022-02-19 19:5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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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KBS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캡처)

 

[매일안전신문=이현정 기자] 김영철이 명동 거리를 거닐었다.


19일 저녁 7시 10분 방송된 KBS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에서는 서울 명동을 찾은 김영철의 모습이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김영철이 찾아간 서울의 중심이자 번화가의 대명사로 통하는 명동은 유서 깊은 서울의 역사와 가슴 뛰는 시절의 추억이 공존하는 곳이다.

김영철은 가장 먼저 전통이 깃든 양복점을 찾았다. 1960년대 명동 양장점을 시작으로 전국의 패션이 결정되던 때를 지나 1970년대 경제 성장으로 기성복 시장이 형성되고 대형 백화점들이 패션을 선도하면서 명동은 '유행 1번지'로 자리 잡았다고 한다.

23년 동안 한자리에서 명동의 패션을 지켜온 3평 남짓의 수선집에는 경북 예천에서 일곱 자매로 태어나 일찍이 춘천으로 시집갔던 큰언니와 어린 나이에 수선 일을 시작한 셋째 동생이 함께 운영하는 곳이다.

서울 명동의 기성복 매장에서 10년을 일한 동생이 IMF로 명예퇴직을 한 후 지금의 수선집을 차리게 됐다고 했다.

또 한국 전쟁 이후 문화·예술인들이 모여들며 황금시대를 열었던 명동에는 오늘날의 배우 김영철을 있게 한 곳이 있다고 했다.

바로 1934년부터 1973년까지 영화관, 공연장, 예술 극장의 역할을 같이 하며 한국문화예술계를 이끌었던 명동국립극장이다. 3년간의 복원공사 끝에 2009년 '명동예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연 이곳에서 배우 김영철은 젊은 날의 꿈과 열정을 떠올렸다.

또 김영철은 70~80년대 명동은 비엔나커피를 마시기 위해 카페 밖까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것을 발견했다. 빈티지한 원목 테이블과 손때 묻은 가죽소파가 김영철의 눈길을 끌었다. 김영철은 50년 세월이 그대로 남아있는 카페에서 한 잔의 추억을 맛봤다.

이어 김영철은 명동의 명물 명동성당을 찾은 후 명동의 청년 사장님 우동을 먹으러 갔다.

한때 국내 최고 상권으로 꼽혔지만 코로나19 이후 공실률 50%를 기록한 명동에서 도전을 시작한 청년이 있다. 일본에서 2년간 우동을 연구하고 돌아와 가게를 차린 지 6개월 차린 사장님은 요리도 과학이라는 신념아래 매일 변하는 온도와 습도에 맞춰 반죽을 만들고 면의 두께를 정한다고 했다.  

 

▲(사진, KBS1TV '김영철의 동네 한 바퀴' 캡처)

정성으로 뽑은 면발에 직접 개발한 육수와 소스까지 더해야 완성되는 우동 한 그릇에는 청년사장의 열정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이어 김영철은 명동 길거리 음식을 맛보게 됐다. 명동 거리는 떡볶이,닭꼬치부터 가리비구이, 꽃게튀김, 닭날개 볶음밥 등 독특한 메뉴가 많았다.

그러나 하나의 문화로 여겨졌던 200여 개의 노점들 대부분이 코로나19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폐업한 지금 명동 거리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작은 가게가 있다. 막내딸과 힘을 합쳐 14년째 한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분식집이다.

어린 나이에 남대문 시장에서 리어카로 떡볶이 장사를 시작한 지 33년 만에 첫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는데 사장님의 깊은 내공으로 탄생한 떡볶이는 통마늘을 직접 갈아 넣어 진한 마늘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게 특징이다.

김영철은 떡볶이를 먹고 "매운향이 올라온다"고 감탄했다.

또 오징어 보다 귀한 한치만을 고집하는 불고기집이 있었다. 40년 전 명동에 처음 들어와 양화점, 도시락가게를 전전하다 한치불고기 식당으로 자리를 잡게 된 사장님은 일찍 세상을 떠난 남편을 대신해 든든한 아들이 20년 째 그 곁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이어 김영철은 시계방을 지키는 사장님을 만나 그 긴세월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안전신문 / 이현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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