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보러 수백m 뛰어가야 해요" 건설 여성노동자들의 울분

신윤희 기자 / 기사승인 : 2020-05-06 10: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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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여성위원회 조합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건설현장 여성노동자 실태고발 기자회견'을 갖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현장에 여성전용은 없고 남녀공용 화장실만 있는데다 숫자가 적어 항상 남자들과 마주치기 때문에 몇백m 떨어진 원청 사무실로 갑니다.”


1960년대 ‘스푸트니크 충격’ 속에 미국이 러시아와 우주개발 경쟁에서 승리하는 실화를 다룬 2017년작 ‘히든 피겨스’의 내용을 연상시킨다.


흑백차별이 극심한 상황에서 어렵게 나사 입사의 기회를 잡은 흑인 여성들. 그들은 연구실 건물에서 숨겨진 존재들이었다. 백인들과 같은 자리에 커피잔을 놓아둘 수도 없었고 화장실도 따로 써야 했다. 흑인 여성 최초의 웨스트버지니아대 대학원 출신인 수학 영재 캐서린 존슨(타라지 헨슨 분)은 연구실 건물 안에 ‘유색인종 전용화장실’이 없어 비를 맞으며 건물 밖 800m 떨어진 곳까지 뛰어가야 했다.


하지만 우주비행사 존 글렌(글렌 포웰 분)은 미국 최초의 지구궤도 비행에 나서기 전 “그 여자분(존슨)에게 숫자를 점검하게 해주세요. 그분이 숫자가 옳다고 하면 출발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존슨은 미국 우주개발 성공의 숨은 주역이었다.


우주 개발과 같은 거창한 이야기까지는 아니지만 영화 속 상황이 건설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 여성위원회 회원들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실태를 그 고발했다.


플랜트건설노조 경인지부의 고현미 조합원은 “한 번 (화장실까지) 다녀오면 약 30분 정도 걸려 관리자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이로 인해 병에 걸리는 경우도 많다”고 하소연했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총 공사 금액이 1억원 이상인 건설현장에 의무적으로 화장실과 탈의실을 설치해야 하지만, 대부분은 남녀공용화장실이다. 이런 탓에 여성 노동자들은 먼 곳의 화장실을 이용하는 등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고씨는 “남성과 컨테이너를 나눠 쓰는 식으로 탈의실이 마련돼 있다보니 여성 노동자 대부분은 집에서 작업복을 입고 출근한다”고 전했다. 퇴근 시간에 약속이 있으면 남성들이 퇴근한 뒤 급히 갈아입거나 공구실이나 화장실에서 눈치보며 일반 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한다.


건설현장은 이미 외국계 노동자들이 다수를 차지할 정도로 국내 인력이 부족하다. 여성 노동자들은 건설 현장을 지키는 숨은 주역과도 같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은 성희롱과 업무 배제, 편의시설 부족 등으로 겪는 차별이 심하다.


여성위원회에 따르면 여성 노동자들이 매년 꾸준히 증하하면서 건설산업 종사자 중 비율은 2016년 기준으로 9.5%에 이르고 있다. 10명 중 1명이 여성 근로자라는 얘기다.


여성위원회는 “적지 않은 숫자에도 불구하고 현장 내 편의시설이 없어 기본적인 생리현상도 편하게 해결할 수 없고, 농담을 빌미삼아 일상적 성희롱을 당하고 있지만 이를 예방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구제기구는 없다”고 지적했다.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의 조은채 조합원은 현장에서 “세월 좋아졌다, 여자가 현장이라니”, “남편은 뭐하는데 여기에 왔나”, “갈 데까지 갔으니 현장까지 왔겠지”, “나랑 만나면 힘들게 일 안 해도 된다”는 등과 같은 폭언을 듣기가 일쑤라고 증언했다.


건설노조는 이에 따라 건설근로자 고용개선 기본계획 수립 단계에서의 여성 노동자 의견을 수렴하고 산업안전보건교육시 성희롱 예방교육 및 성평등 교육을, 기능훈련과 취업 알선 담당자 대상으로 한 성인지교육·성평등의식 향상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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