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 화재 참사’ 1심 선고는 꼬리자르기?

박효영 / 기사승인 : 2020-12-30 14: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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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안전신문] 노동자 38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 화재 참사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지난 4월29일 발생했으니 8개월만이다. 우인성 부장판사(수원지방법원 여주지원 형사1단독)는 29일 오후 1심 선고 공판을 열고 시공사 ‘건우’ 현장 관리소장과 실무자, 발주처 ‘한익스프레스’ 직원, 감리단장 등 5명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지난 5월1일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한 뒤 놓아둔 국화꽃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지난 5월1일 경기도 이천시의 한 물류창고 공사장 화재 현장에서 시민단체가 기자회견을 한 뒤 놓아둔 국화꽃이 놓여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참사를 복기해보면 지하 2층 방화문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이슬이 맺히지 않아야 한다며 벽돌을 쌓아놓았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 4명이 대피하지 못 해 숨졌다. 우 판사는 한익스프레스 소속 TF팀장 A씨가 비상 대피로 폐쇄를 주도했다고 보고 금고 8개월에 집행유예 2년 사회봉사 400시간을 선고했다.


이 대목은 그나마 의미있는 부분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재법)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는 있지만 그동안 한국에서는 아무리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희생돼도 원청 기업의 책임을 묻지 않았었다. 위험한 작업을 하청에 재하청으로 떠넘기는 곳은 원청이지만 안전 의무 책임을 면제해줬고 법원도 그 역할을 그대로 수행해왔다. 사실 한익스프레스는 대피로 폐쇄 외에도 화재 감시자 미배치, 임시 소방시설 미설치, 무리한 공사기간 단축 요구 등 책임질 일이 많다. 그럼에도 팀장급 인물 1명에게 집행유예 선고로 퉁쳐지게 됐으니 노동 인권의 관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우 판사는 △안전총괄 책임자였던 건우 현장 관리소장 B씨에게 징역 3년6개월 △건우의 다른 직원 C씨에게 금고 2년3개월 △감리단장 D씨에게 금고 1년8개월 △협력업체 직원 E씨에게는 벌금 7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건우 법인 자체에도 벌금 30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러나 같은 혐의로 기소된 다른 관계자 4명에 대해서는 화재 원인의 인과관계를 다르게 해석해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천 화재 참사와 관련 재발방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이천 화재 참사와 관련 재발방지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제공)

앞선 7월 수원지방검찰청 여주지청 형사부(한기식 부장검사)는 10명 가량을 구속기소했다. 사건을 검찰에 송치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지하 2층 천장에 설치된 냉동 설비의 유니트쿨러(실내기) 배관 용접 작업 중 발생한 불티가 벽면 속에 발라져 있던 우레탄폼과 만나 화재로 번졌다고 결론을 낸 바 있다. 하지만 우 판사는 지상 3층 승강기 용접 작업 도중 발생한 불티가 통로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떨어졌을 수도 있다고 봤다. 화재 원인을 두고 다른 해석을 한 것이다. 지하 2층이 아니라 지상 3층에서의 과실이 시작점이기 때문에 하청업체 관계자 5명은 무죄를 받게 됐다.


경찰의 수사 맥락에 수긍하고 있는 검찰은 여러 증거와 증언을 종합해봤을 때 지상 3층에서 발생한 불씨가 화재의 원인일 가능성을 검토해봤지만 타당하지 않아 일찌감치 배제했다. 그래서 곧 항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희생자 유족을 대리하는 천지선 변호사(법률사무소 마중)는 “발주처의 책임을 인정했다는 부분에서는 진일보한 면이 있는 판결 선고였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유족이 납득할 만한 정도의 형벌이 내려졌다고 보기는 힘들 것 같아서 그 부분은 아쉽다”고 밝혔다.


진보진영과 노동계에서는 이천 참사에 대해 “한국의 후진국형 산업재해 참사”라고 한 목소리로 규정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얼마나 비용 및 시간 절감 압박이 심했으면 우레탄 코팅 작업과 용접을 동시에 하겠느냐는 것이다. 우레탄 작업을 하면 유증기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 와중에 용접을 하면 불꽃이 큰 불로 번질 가능성이 높다. 누구나 예측가능한 기본 상식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불에 잘 타는 샌드위치 패널이 매연과 유독가스를 내뿜었고, 환기도 잘 안 돼 있었고, 화재 경보기나 자동확산소화기 같은 소방시설도 전혀 없었다.


용접과 우레탄 작업은 절대 동시에 이뤄지면 안 된다. (캡처사진=SBS)
용접과 우레탄 작업은 절대 동시에 이뤄지면 안 된다. (캡처사진=SBS)

사실 이천 공사 현장에서는 2019년 11월과 올해 4월초에도 작은 화재들이 발생했었다고 한다. 원인은 참사 때와 거의 똑같다. 그때는 참사로 연결되지 않고 금방 진화됐지만 결국 용접 중 발생한 불꽃이 화재를 일으킬 수 있다는 여러 경고를 무시한 결과 고귀한 38명의 목숨을 짓밟고 말았다. 이건 ‘하인리히 법칙’을 넘어서는 일이다. 위험한 징후도 아니고 대놓고 똑같은 사고가 반복되었지만 누군가 죽지 않는 이상 멈추지 않았던 것이다.


장태수 정의당 대변인은 30일 오전 논평을 내고 “중대재해 발생 원인을 공사기간 단축과 무리한 작업으로 지적한 재판부의 판단은 옳다”면서도 “공사기간 단축을 요구한 발주처 책임자는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 팀장이 공사기간 단축을 요구한 책임자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현장 관리소장에게만 무리한 작업의 책임을 물은 것도 과연 공정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우는 이 사건 직전인 4월13일에도 노동자가 떨어져 죽는 중대재해가 일어났던 사업체인데 이 사업체의 대표(이상섭 대표)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았다”며 “38명을 죽인 중대재해범죄의 실질적인 책임자들은 쏙 빼놓고 고용된 업무담당자 몇 사람에게만 그 책임을 뒤집어씌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미숙 이사장(가운데)이 백혜련 의원에게 따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김미숙 이사장(가운데)이 백혜련 의원에게 따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결국 정의당은 제대로 된 중재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장 대변인은 “어제 정부가 밝힌 중재법에 대한 의견은 지금과 같은 판결을 계속 용인하는 것”이라며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을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편의를 봐주는 것이다. 이래서는 중대재해 범죄를 줄일 수 없다. 하루 6명씩 죽어나가는 노동자들의 목숨을 지킬 수 없다. 입법권을 가진 국회가 제대로 된 중재법을 만들어 이 죽음의 행렬을 멈춰야 한다. 묵인이 불러일으킬 폐해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고 촉구했다.


29일 발표된 중재법 정부 단일안의 골자는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4년간 적용 유예에 더해 100인 미만 사업장까지 2년간 유예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실 손해액의 5배 이내로 제한 △원청 발주처가 안전보건 의무 3회 이상 위반한 뒤 중대재해 발생시 인과관계를 추정해서 책임을 묻겠다는 조항 삭제 등이다.


20일째 국회 본청 앞에서 중재법 처리를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하고 있는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은 2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소위 회의장 복도에서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소위원장)과 만나 “어떻게 그런 안을 정부안이라고 내놨는가. 너무 한껏 낮춰갔고 이거 사람 살릴 수 없는 법을 만들어놨다”며 “용균이도 다 빠져 있다. 산업안전보건법 때처럼 지금 또 계속 죽이겠다는 것 아닌가?”라고 항의했다.


백 의원은 기자들에게 “정부는 여러 각계각층의 입장을 종합하고 취합해서 의견을 낼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박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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