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안전신문] 지난달 7일 22시30분 즈음 광주 북구 양산동의 OB맥주 광주공장 인근 도로에서 한 차량이 음주 단속 현장을 목격하고 바로 유턴을 시도해서 도망가려다 붙잡혔다. 운전자 A씨는 순찰차에 태워져 음주 측정 장소로 돌아왔는데 내리자마자 바로 도주했다. A씨는 4미터 높이의 옹벽 아래로 뛰어내려 경찰의 추격을 따돌렸다. 경찰은 A씨의 차량을 토대로 조회를 해본 결과 그가 현직 경찰관 신분임을 확인했다. A씨는 광주 북부경찰서 모 지구대 소속 경위였다. 경찰은 A씨의 집으로 찾아갔지만 아무도 없었고 스마트폰을 차량에 두고 가서 위치추적도 불가능했다.
A씨는 8일 아침 8시반 즈음 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혈중알콜농도 수치가 나오지 않을 만큼의 시간이 흘렀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 0%가 나왔다. 노림수대로 객관적 수치를 0%로 만든 A씨는 음주운전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북부경찰서는 A씨의 동선을 추적해서 음식점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CCTV 영상을 확보했다.
누가 봐도 현직 경찰관임에도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는 것이 두려워 도주극을 벌였다고 보여진다. 그래서 경찰은 A씨의 행적을 조사해서 여러 증거들을 확보했고 A씨는 결국 자진해서 해당 음식점 영수증을 제출하는 등 음주 사실을 인정했다.
사실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CCTV의 화질이 불량했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은 전문업체에 영상 분석 의뢰를 맡겼는데 A씨는 그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이실직고를 했다.
2018년 연말 윤창호법 제정 이후 음주운전에 대한 여론의 경각심이 높아졌다. A씨는 현직 경찰관 신분으로 음주운전을 범했다. 법적으로 입증되지 못 했더라도 스스로 음주운전 범죄 혐의를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게 얼마나 큰 잘못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기를 쓰고 도망가서 자기 혐의를 지우려고 했던 것이다.
음주운전 후에 A씨처럼 도주를 시도한 사례는 자주 있는 일이다. 주로 음주 사고를 낸 직후 사고 수습없이 차량 도주극을 벌이는 일이 많은데 그러다가 더 큰 화를 부른다. 도주 중에는 무리한 고속 주행을 하게 되고 중앙선 침범 등 곡예 운전이 펼쳐진다. 그야말로 “살인 운전”이다.
실제 지난 1일 광주 광산구 장덕동의 한 사거리에서 음주운전 범죄자 20대 남성 B씨가 택시를 들이받고 도주하다 중앙선을 침범했고 맞은편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을 들이받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미용 관련 창업을 앞두고 있던 20대 여성이 목숨을 잃었다.
물론 A씨는 도보로 도망갔기 때문에 그런 참사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잘못에 대한 대가가 두려워 더 큰 악수를 두고자 하는 욕심은 똑같다. 그 욕심이 돌이킬 수 없는 화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일단 A씨는 직위해제 조치됐다.
문제는 A씨가 음주 사실을 인정했음에도 그에게 적용할 법적 혐의가 애매하다는 점이다. 일단 A씨에게 적용해볼 수 있는 범죄 혐의는 ①도로교통법상 음주측정 거부 ②도주죄 ③공무집행방해죄 등이 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명확하게 적용하기 어려운 사정이 있다. 우선 음주측정 고지를 받기 전에 도망갔기 때문에 음주측정 거부 혐의를 적용할 수가 없다. 도주죄 역시 미란다 원칙을 고지받고 신병이 확보된 상황에서 도망간 게 아니라 성립되기 어렵다. 공무집행방해죄는 도주할 때 경찰을 폭행하거나 협박한 사실이 없어서 적용하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위드마크 공식을 활용한 음주 역산법이 최근 들어 법정에서 별로 인정되지 않고 있어 걱정스럽다. 위드마크 공식은 술의 도수, 음주량, 신체조건, 경과된 시간 등을 따져서 혈중알콜농도를 역산해내는 수사 기법이다. 이를 통해 그 당시 음주 수치가 0.03% 이상이었다는 점을 확정해봤자 법원이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방송인 이창명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씨는 2016년 4월20일 서울 여의도삼거리에서 법인 명의의 포르쉐 카이엔을 타고 가다 신호등을 들이받았다. 이씨는 현장에 차를 방치한 뒤 도주했고 20시간 정도 잠적해버렸다. 경찰과 검찰은 이씨를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했지만 대법원은 2018년 3월 이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대법원은 위드마크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되는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 엄격한 증명이 필요하다”고 판시했다.
결국 음주측정을 회피하는 사례에 대비하기 위한 법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 음주 단속 현장을 발견하고 도주하는 행위 자체를 구성요건으로 설계해서 입법해도 좋을 것이다.
무등일보는 12월21일 사설을 통해 “이 사건 처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 크다. 혐의가 입증되지 않을 경우 도주에만 성공하면 처벌을 면할 수 있다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일반인이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경찰은 제식구 감싸기란 오해를 받지 말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북부경찰서는 소속 경찰관의 범죄 혐의에 대해 직접 수사를 할 수 없어서 광산경찰서로 이첩했는데 아직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매일안전신문 취재 결과 거의 마무리 단계인 것으로 파악됐다. 광주경찰청은 향후 A씨에 대한 수사 결과가 나오면 징계 절차에 착수할 계획이다. / 박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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