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그 많은 조선인들이 탔던 배는 무슨일이 있었을까...우키시마호 재조명

이현정 기자 / 기사승인 : 2024-01-25 22:5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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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매일안전신문=이현정 기자] 부산행 여객선 우키시마호가 의문의 폭발과 함께 침몰한 사건이 재조명 받고 있다.

 

25일 밤 10시 20분 방송된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에서는 '가라앉은 진실과 미스터리한 그날의 항로. 그리고 그날을 기억하는 생존자들의 마지막 목소리'편으로 그려졌다.

 

이날 방송에서 다뤄진 부산행 여객선 우키시마호 사건은 당시 부산에 살던 전병관씨가 신문을 보다 오래전 어느 사고의 생존자를 찾는다는 자그마한 기사가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고 느낀 것에서 시작됐다. 수천 톤의 여객선이 바닷속으로 침몰했다는 이야기는 언젠가 아버지에게 들은 것과 비슷했다는 것이다. 한국인 수천 명이 탑승한 여객선이 바다 한가운데 침몰해 엄청난 사상자가 발생했다. 배의 이름은 떠다니는 섬이란 뜻의 '우키시마호'다. 

 

우키시마호가 출항한 곳은 일본 북단 아오모리현의 오미나토항구로 출항일은 1945년 8월 22일이었다. 우키시마호는 광복 일주일 만에 일본 본토를 통틀어 처음으로 마련된 귀국선이었다. 고향으로 보내주겠다며 아오모리현 일대 조선인들을 일제히 모집한 오미나토 해군이었다. 그렇게 항구에 모여든 한국인 수가 무려 수천 명이었다. 

 

그중엔 울산 울주군에서 강제 동원되어 끌려온 18살의 전영택씨, 온 가족이 돈을 벌러 이주했던 최억조씨 가족, 거창 고향 땅에 아내와 3살짜리 아들 한영용군을 남기고 강제 동원된 한석희씨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오미나토 해군은 왜 첫 번째 귀국선을 ‘마지막 귀국선’으로 홍보했다.

 

부산행 우키시마호는 1945년 8월 22일 밤 10시, 일본 오미나토항구를 출발했다. 오미나토항에서 부산까지는 3, 4일이 소요되는 거리여서 예정대로라면 10월 25일 아침에는 부산항에 도착해야 한다.

 

▲(사진, 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캡처)

 

항해 사흘째였던 8월 24일 오후 5시, 배는 여전히 일본 연안에 있었다. 교토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마이즈루만였다. 수상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일본인 승조원들이 항해 도중 이상한 행동들을 했던 것이다. 과자, 통조림, 개인 침구를 갑자기 승객들에게 나눠주거나 바다에 던져버리는  것이었다. 급기야 일부 승조원이 구명정을 내려 배를 빠져나가는 장면까지 목격됐다.

 

바로 그 순간 귀를 찢는 폭발음과 함께 엄청난 충격이 가해진다. 배가 하늘 위로 치솟는 것처럼 선체가 들리는 느낌이 전해지는데 충격에 쓰러진 영택씨가 정신을 차리기도 잠시 눈앞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두 동강 나 가라앉는 선체의 배 아래는 바닷물이 밀려 들어오고 수천 명의 사람들은 살기 위해 사다리를 부여잡으며 침몰한 것이다.


이 사건은 패망 이후 일본 전범 재판과 관련하여 강제징용했던 조선인 노동자들이 폭동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우려 하에 일제는 수많은 조선인 노동자들을 일본 해군에서 징발한 4740톤급 화물선 우키시마호에 태워 오미나토 항에서 부산으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했고 오미나토에서 출항한 우키시마호가 돌연 방향을 돌려 일본 마이즈루 항으로 향하더니 8월 24일에 해상에서 갑자기 폭음과 함께 폭발한 사건이다.

매일안전신문 / 이현정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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