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조사결과]대법, 굴삭기 기사 산재 구상금 청구 기각…“같은 현장 위험 공유”

이상훈 기자 / 기사승인 : 2026-05-02 14:5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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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은 근로계약 부재 중시, 대법은 실질 작업관계 판단
▲ 법원 사진(대법원 홈페이지 캡처)

[매일안전신문=이상훈 기자]  

대법원이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구상권 행사 대상을 판단할 때 형식적인 근로계약 유무보다 같은 사업장에서 업무상 위험을 공유했는지를 따져야 한다는 법리를 재확인했다.

 

대법원 1부는 2026년 4월 2일 근로복지공단이 건설기계 대여업자인 굴삭기 운전자를 상대로 낸 구상금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번 사건은 2018년 3월 부산 해운대구 한 복합시설 철거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에서 비롯됐다. 굴삭기 운전자는 철거공사 현장에서 기둥 해체 작업을 하던 중 철근이 튀게 했고, 이 철근이 같은 현장에 있던 근로자의 얼굴을 가격했다. 피해 근로자는 턱과 얼굴 부위에 상해를 입었고 근로복지공단은 이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해 휴업급여, 요양급여, 장해급여 등 약 7천800만 원을 지급했다.

 

공단은 이후 굴삭기 운전자를 상대로 구상금 청구 소송을 냈다.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은 공단이 제3자의 행위로 발생한 재해에 대해 보험급여를 지급한 경우, 보험급여 한도 안에서 피해 근로자의 제3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신 행사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하급심의 판단은 공단 쪽으로 기울었다. 굴삭기 운전자가 공사업체와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가 아니라 운전노무 제공 계약을 맺고 현장에 참여한 개인사업자라는 점이 판단의 근거가 됐다. 1심은 굴삭기 운전자의 책임을 일부 인정해 공단에 약 1천1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단했고, 항소심도 이를 유지했다.

 

대법원은 같은 사실관계를 두고 다른 결론을 냈다. 쟁점은 굴삭기 운전자가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에서 말하는 ‘제3자’에 해당하는지였다. 대법원은 단순히 근로계약이 있었는지를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재해가 발생한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업무상 재해에 관한 공동의 위험관계를 형성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봤다.

 

대법원은 굴삭기 운전자가 공사업체의 지휘·명령 아래 공사 현장에서 굴삭기 작업을 수행했고, 피해 근로자 역시 같은 업체 소속으로 같은 현장에서 작업했다는 점에 주목했다. 두 사람이 동일한 사업주의 지휘·명령 아래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업장에 내재한 위험을 공유했고, 그 위험이 현실화해 사고가 발생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따라 대법원은 굴삭기 운전자가 산재보험법상 제3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공단이 피해 근로자에게 보험급여를 지급했더라도, 같은 사업장 내부의 업무상 위험이 현실화한 사고라면 피해 근로자의 손해배상청구권을 대위해 굴삭기 운전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취지다.

 

이번 판단은 지난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제시한 산재보험 구상권 법리와 같은 흐름에 있다. 전원합의체는 산재보험법 제87조 제1항의 제3자성을 판단할 때 기존처럼 재해 근로자와의 산재보험관계 유무만 볼 것이 아니라, 사업장에 내재한 동일한 위험을 공유했는지를 중심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건설현장에서는 굴삭기, 지게차, 크레인 등 건설기계 작업자가 근로계약이 아닌 임대차·노무제공 계약 형태로 현장에 투입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 경우 사고가 발생하면 작업자가 피해 근로자와 같은 현장에서 같은 작업 흐름에 있었더라도 형식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공단 구상권 대상이 되는지가 다퉈졌다.

 

이번 판결은 이 같은 사건에서 계약 형식보다 실제 작업관계와 위험 부담 구조를 우선해 본 사례다. 같은 사업주의 지휘·명령 아래 같은 현장 위험을 나누고 있었다면, 사고를 일으킨 사람이 근로계약을 맺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산재보험 구상권의 상대방이 되지는 않는다는 판단이다.

 

다만 이번 판결이 모든 외부 작업자에 대한 구상권 행사를 배제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대법원 판단의 핵심은 동일 사업주 지휘·명령 아래 같은 사업장 위험을 공유했는지 여부다. 사고를 낸 사람이 별도의 지휘체계에서 독립적으로 작업했는지, 피해 근로자와 같은 작업 흐름에 편입돼 있었는지, 사고 위험이 사업장 내부의 공통 위험으로 볼 수 있는지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산재보험 구상권 사건에서 앞으로의 쟁점은 ‘누가 고용했는가’만이 아니라 ‘누가 지휘했는가’, ‘어떤 작업에 편입됐는가’, ‘같은 위험을 나눴는가’로 좁혀질 가능성이 크다. 건설기계 운전자와 하도급·노무제공 형태의 현장 작업자가 얽힌 사고에서 현장의 실질적 작업구조가 더 중요하게 다뤄지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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