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나신걸 한글편지' 보물로 지정

김진섭 기자 / 기사승인 : 2023-03-09 17:5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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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신걸 한글편지 (사진=문화재청)

 

[매일안전신문=김진섭 기자]문화재청이 반포의 생생한 역사가 담긴 ‘나신걸 한글편지’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됐다.

 

문화재청은 9일 조선 초기 군관 나신걸이 아내 신창 맹씨에게 한글로 써서 보낸 편지인 '나신걸 한글편지'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편지는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맹씨 묘에서 출토됐다. 두 장으로 구성된 편지는 맹씨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됐다. 묘에서는 의복 28점을 비롯한 총 41점의 유물이 나왔다.



나신걸의 편지는 2011년 대전시 유성구 금고동에 있던 조선 시대 신창맹씨 묘안 피장자의 머리맡에서 여러 번 접힌 상태로 발견됐다.


편지의 제작시기는 내용 중 1470~1498년 동안 쓰인 함경도의 옛 지명인 ‘영안도(永安道)’라는 말이 보이는 점과 나신걸이 함경도에서 군관 생활을 한 시기가 1490년대라는 점을 통해 추정할 수 있다

 

편지는 아래, 위, 좌우에 걸쳐 빼곡히 채워 썼으며, 주된 내용은 어머니와 자녀들에 대한 그리움, 철릭(조선 시대 무관이 입던 공식의복) 등 필요한 의복을 보내주고, 농사일을 잘 챙기며 소소한 가정사를 살펴봐 달라는 부탁이다.

이 편지가 1490년대에 쓰였음을 감안하면, 1446년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불과 45년이 지난 시점에서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변방지역과 하급관리에게까지 한글이 널리 보급되었던 실상을 알 수 있다.

특히 조선 시대에 한글이 여성 중심의 글이었다고 인식되었던 것과 달리, 하급 무관 나신걸이 유려하고 막힘없이 쓴 것을 보면, 조선 초기부터 남성들 역시 한글을 익숙하게 사용했음을 보여 준다.

기존에는 조선 시대 관청에서 간행된 문헌만으로는 한글이 대중에 어느 정도까지 보급되었는지 파악하기 어려웠다면, ‘나신걸 한글편지’가 발견됨으로써 한글이 조선 백성들의 실생활 속에서 널리 쓰인 사실을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문화재청은 “해당 유물은 현재까지 발견된 한글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자료이자 상대방에 대한 호칭, 높임말 사용 등 15세기 언어생활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라며 “앞으로 조선 초기 백성들의 삶과 가정 경영의 실태, 농경문화, 여성들의 생활, 문관 복식, 국어사 연구를 하는 데 있어 활발하게 활용될 가치가 충분하며, 무엇보다도 훈민정음 반포의 실상을 알려주는 언어학적 사료로서 학술적·역사적 의의가 매우 크다”라고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또한 '창녕 관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도 보물로 지정했다.

17세기 활약한 조각승 응혜의 대표작인 '창녕 관룡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관룡사 명부전(법당)에 봉안한 17구의 불상을 가리킨다.

앞을 바라보는 자세에 뾰족한 수염과 낮은 코, 한쪽 팔을 뒤로 빼서 기댄 채 수염을 만지는 여유로운 모습의 시왕(지옥에서 망자의 죄를 심판하는 10인의 왕)상, 과장된 투구를 쓴 금강역사(사찰이나 불상을 지키는 수호신)상은 응혜의 조각에서 엿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다. 발원문 등 관련 기록을 잘 구비하고 있고 작품의 완성도도 뛰어나다.

'서울 청룡사 비로자나불 삼신괘불도'는 1806년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왕후의 장수를 기원하며 상궁 최씨가 발원한 대형 불화다. 당대 대표적 화승이었던 민관 등 5명이 제작했다.

18~19세기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크게 유행한 새로운 괘불 양식이 반영된 최초의 작품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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