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국 소방관의 죄책감 “먼저 떠난 동료 유니폼 캐비넷에 보관”

박효영 / 기사승인 : 2020-12-23 16: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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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안전신문] 목숨을 걸고 시민들의 생명을 구하는 소방관도 말하지 못 할 아픔이 있다. 동료 소방관과 함께 위험 속에 뛰어들었다가 혼자 생존했다면 내 잘못이 아님에도 너무나 고통스럽다. 그 죄책감은 스스로의 삶을 짓누르기도 한다. 국가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소방관에 대해 순직을 인정하고 특별 승진을 내렸다.


정희국 소방관과 강기봉 소방관의 생전 모습. (사진=울산소방본부)
정희국 소방관과 강기봉 소방관의 생전 모습. (사진=울산소방본부)

故 정희국 소방관은 2016년 10월5일 울산을 강타한 태풍 ‘차바’로 고립된 주민을 구조하기 위해 현장으로 갔다. 정 소방관은 절친한 후배 故 강기봉 소방관과 울산시 울주군 회야강변 인근 차량에 사람이 갇혀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구조에 나섰다가 불어난 물살에 휩쓸렸다. 정 소방관은 전봇대에 몸을 의지하며, 가로등에 기대 버티고 있는 강 소방관과 끝까지 생존해보려고 했으나 그러지 못 했다. 정 소방관은 “더는 못 견디겠어요”라고 말하는 강 소방관에게 “꼭 함께 살자”고 약속했지만 지키지 못 했다. 정 소방관은 2km 넘게 떠내려간 뒤 가까스로 물살에서 벗어났고, 강 소방관은 숨진채 발견됐다. 정 소방관은 가장 아끼는 후배를 남겨두고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에 너무 괴로워했고 3년이 흐른 2019년 8월5일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주변에서는 정 소방관이 3년간 트라우마를 잘 극복한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스마트폰에는 “너무 괴롭다. 정신과 치료도 약도 보탬이 되지 않는다. 가족을 위해 버텨왔다. (기봉이와) 같이 살고 같이 죽었어야만 했다”라는 긴 글이 발견됐다. 그의 캐비넷에서는 강 소방관의 유니폼이 그대로 걸려있었다. 강 소방관의 죽음 이후 한시도 잊지 않고 가슴에 묻어뒀던 것이다.


정 소방관의 캐비넷에서 발견된 강 소방관의 유니폼. (사진=울산소방본부)
정 소방관의 캐비넷에서 발견된 강 소방관의 유니폼. (사진=울산소방본부)

사실 “위험직무 순직” 인정이 쉽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다.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하다 사망한 것이 아니라 동료의 죽음을 막지 못 했다는 정신적 후유증으로 인한 고통 속 사후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5월 인사혁신처는 정 소방관에 대해 위험직무 순직을 인정했다. 그동안 “현장에서 사망했는지가 판단의 중요한 기준이 됐다”는 불문법이 깨진 것이다. 국가보훈처는 11월에 정 소방관을 국가유공자로 등록하고 국립묘지 안장을 승인했다.


울산소방본부는 22일 오전 울산시청에서 정 소방관의 특별승진 임용식을 개최했다. 유족, 동료들, 송철호 울산시장 등이 참석했다. 송 시장은 정 소방관에게 1계급 특별승진 임용장과 옥조근정훈장을 수여했다. 정 소방관의 최종 계급이 소방교였으니 1계급 승진에 따라 “소방위”가 됐다. 유족에게는 공로패와 격려품이 전달됐다. 삼두종합기술의 최영수 대표는 사연을 전해 듣고 유족을 위해 써달라며 2800만원을 기부했는데 그 기부금도 전달됐다. 무엇보다 “소방관의 안전이 곧 시민의 안전”이라는 철칙이 중요하다. 송 시장은 관련 특별 담화가 담긴 ‘시장 안전 메시지’를 엄준욱 소방본부장에게 전달했다.


엄 본부장은 “(정 소방관이) 동료를 잃은 슬픔으로 혼자 괴로워했을 것을 생각하면 소방 동료로서 마음이 아프다. 이제 모든 짐을 내려두고 편히 영면하길 바란다”며 “고인의 희생을 되새기고 소방공무원의 안전이 곧 시민의 안전이라는 마음으로 시민 생명과 재산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 박효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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